The Spiral
칼 융에 따르면 모든 정신의 성장과 후퇴는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우주의 블랙홀에서 별이 빨려들어가듯이. 우리 모두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면서도 잘 되어가다 어느순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비슷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약간 위로 올라온 상태, 그러니까 그저 그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3차원의 세계로 생각해야한다고 융은 주장한다. 그의 이론을 직접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나서는 내 인생에 어떤 시련이 와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견딜 수 없이 힘들게하는 기억들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그 사건들이 나를 뉴욕에 위치한 비영리단체로 이끌어서 내가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일로 연결되었으니 과거를 원망만 하지 않지만 그 일이 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준건 명백하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라는 공권력을 이용해 나를 일방적으로 폭행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기억은 현재까지도 교감신경을 자극하며 날 피곤하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에게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스스로 행복의 증거가 되고 싶었고, 끔찍한 일에 무너지지 않고 누구를 사랑하고 싶었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남성성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 과정으로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 모든것이 그렇듯이 남성성에도 분명한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남성호르몬으로 인한 큰 에너지다. 현대 진화생물학과 융은 에로스야 말로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집단무의식의 가장 강렬한 원형이라고 역설한다. 즉 섹스나 성적인 강렬한 감정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나 의식은 무기력해진다. 프로이트가 정의한 그 리비도가 인류애를 향할때 릴케나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사람이 탄생한다. 신이 인류에게 준 선물 같은 남성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남성성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호르몬에 의한 에너지가 폭력성으로 현실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폭력은 내가 가진 물리적 힘보다 강해서 나를 위협한다.
칼 융은 이 생물학적인 단계를 넘어서라고 말한다. 융은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을 통해 남자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 여성의 내면에 있는 남성성을 일깨워 통합하여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 3의 통합된 성으로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아니마, 아니무스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평생에 걸치는 창조적 작업이다. 단,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에서 여성적/남성적 사회 규범을 무의미한 것으로만 여기는 것은 일방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가 무의식에서 나온 것처럼 사회 규범도 무의식에서 싹텄다. 여기서 문제는 그것이 집단적인 행동규범으로 굳어졌다는거다. 우리가 집단적인 것을 버리고 개성을 찾아야 한다고 할 때 일찍이 만들어진 적 없는 것을 버릴 수는 없다. 청년기까지 열심히 페르소나를 닦은 사람만이 그것을 추후에 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