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Persona

몇년간 사람들이 유학하며 한국인으로서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없다고 대답했는데, 그건 내가 NYU에 다녀서다. 특히 우리학교 언어학과에서는 내 영어에 한국 억양이 묻어있는게 자랑스러운 점인데, 그건 다중 언어 사용자를 동경하는 언어학과의 전통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국적상) 미국인만 있는 회사에서 일해보니 태세가 전환되며 나의 문법적 실수는 더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언어학자들이 언제나 주장하는 “Everyone has an accent “ 같은 말들은 이곳에서 무용지물이니 당연하다. 분명 언어학과 내에선 내가 밥먹듯 하는 조사 실수가 연구 대상이자 기술 문법(descriptive grammar)으로 인정받았지만 회사에서는 규범 문법(prescriptive grammer)이 원칙이니 그 규칙에 따라야만 했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숨기기 힘들어지는 억양(intonation)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어 나는 최소한의 말만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내 언어로 문제 삼은 사람은 한명도 없으니 이런 태도조차 자의식 과잉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외국인인게 처음으로 실감되니 커다란 회사에서 스스로가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이 외계인 같은 기분을 들게하는 나의 특징은 한국에서 온것이니 이것을 ‘한국적 페르소나’라고 정의한다. 

한국적 페르소나를 확인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는 당당했다. 서울에서 온건 ‘fun fact’ 였고 나만의 소중한 경험처럼 느껴져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교수님에게 내가 나고 자란 도시를 자랑할 수 있었다. 다른 학우들 또한 각자 다양한 배경과 억양을 가져서 한국어 묻은 영어는 무지개 색깔 중 하나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국제학생이 많은 뉴욕대와 달리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밖에 없는 뉴욕 비영리단체 법률부에선 스스로 인정하지 않던 한국적 페르소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 분위기 속에 하나되고 녹아들기 위해서는 말수를 줄이고 그들의 말투를 따라하는게 자연스러운 수순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특징이 회사의 모든 직원과 너무도 달라보여서 나조차도 이를 견디지 못하고 거부했다. 어느순간 한국이 나에게 준 언어적 특성을 저버리고 우리 회사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동부 발음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한국적 페르소나에서 탈피하기 위해 억양을 바꾸는, 그래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감추려는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과연 한국어 억양은 열등한 것일까?

내 억양을 예전처럼 자랑스러워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게 한국적 페르소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열등하게 여기는 자아와 친해지는 과정이 날 성숙하게 만들거라 믿으며 살아온 배경을 감추지 않는 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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